2016-11-30 1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엄마와 딸의 인연만큼 깊은 인연이 있을까 싶습니다. 심리상담을 하는 상황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세상의 그림과는 많이 다르기도 합니다. 엄마와 딸,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담자는 오십이 넘은 중년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삶이 행복하고 왠만큼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늘 마음에 걸리는 것 하나가 딸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딸의 성격이 유난해서 자신과 맞지 않아서 그러리라 여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 딸은 친구도 많고, 사회성도 뛰어나서 주변에 사람이 많으며 개성이 강한 편이지만 많은 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받는 생활을 한다는데 엄마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지극히 예의바르고 반듯한 딸이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함부로 대하고 남이 없는 상태, 즉 둘만 있을때의 딸은 대단히 히스테릭한 상태로 돌변한다는 것입니다. 막말을 하기도 하고, 화를 자주 내며, 또 분노가 폭발할 때는 가까이 있는 물건을 던져서 깨트리기도 하니 엄마는 기가 찬다고 합니다. 남들은 자신의 딸에게 그러한 모습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딸 위로 오빠가 있지만 오빠는 오히려 딸보다 더 온순하고 고운 성정을 가졌다고... 엄마의 입장에서는 사소하게 그냥 지나치듯 한 마디 한 말에 딸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하며 때로는 분노를 폭발하기도 해서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시간이 흐를수록 난감하고 때로는 겁이 나기도 한답니다. 엄마는 아무리 지난 세월을 돌아보아도 어디서 부터 잘못되기 시작한 것인지를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으며 생각할수록 남들이 보기엔 행복한 자신의 모습 속에 커다란 종양 덩어리를 하나 안고 살아가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심리치료, 최면치료를 의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엄마의 입장에선 하나뿐인 딸이라 곱게 키우고 반듯하게 키우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었는데..... 엄마의 말만 듣는다면 사실 아무것도 문제가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관계는 대단히 상대적인 것이기에 딸의 입장에서 엄마를 바라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러한 부분으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정말 별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교양이 있으며 대단히 예의바른 모습을 갖춘 내담자는 자신의 꾸려가는 가정의 성공적인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최고의 엘리트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편과,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거쳐 곧 판사가 될 아들의 착하고 반듯한 성격과 뛰어난 두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딸 역시 힘겹고 어렵긴 하지만 남들이 볼 때는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집안인데...... 정말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자신은 날마다 행복할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객관적인 잣대를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심리검사를 통해 분석해 본 내담자의 성향은 지배성향이 대단히 높은 수치를 보여 주었으며 뜻밖에 강박적 성향도 높았습니다. 그리고 TA(교류분석)적 측면에서 본다면 그녀는 엄격하고 완벽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높은 반면 FC(Free Child) 수치는 대단히 낮았습니다. 이는 어린아이처럼 정서적으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부분에 대한 민감성이 낮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은 엄마가 아이를 엄격하고 완벽한 교육적 기준에 맞춰 양육했으나 딸의 성향이 자유롭고 분방하며 정서적으로 민감한 기질을 가졌다면 서로가 받은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에 그점에 대해 알려드렸지요. 내담자의 친정 아버님께서 엄격한 직업군인이셨기에 늘 집안의 모든 집기는 반드시 정렬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과 책임감과 의무를 강조하는 훈육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경우에는 호된 질책과 꾸중이 뒤따랐다고.. 한 마디로 아버지는 항상 책임감이 투철하고 도덕적이며, 세상과 사람에 대해 대단히 까다롭고 완벽한 기준표를 나름대로 가진 분이었으며 내담자는 바로 그러한 아버지 밑에서 늘 긴장하면서 성장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 내담자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성격을 닮아 아버지가 자기를 키우던 방식으로 딸을 키웠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담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딸의 경우는 앞에서 인용한 TA적 측면에서 봤을 때 엄마와는 반대로 오히려 FC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판단되었는데 이 말은 곧 딸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뜻이 됩니다. 물론 딸을 별도로 면담해봐야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있겠지만 엄마인 내담자의 말만으로도 충분히 딸의 성향이나 생활 모습이 짐작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상황에서 내담자가 딸과의 관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거나 최소한 그 문제에서 좀 더 편안해 지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기와는 다른 딸의 마음이나 성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필요하지요. 그러니까 내담자 자신은 비록 군인인 아버지 밑에서 책임감, 도덕성, 완벽성을 강조받으면서 자랐지만 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요. 왜냐하면, 내담자의 말을 종합할 때, 내담자의 남편이자 딸의 아빠는 비교적 관대하고 허용적인 태도를 가졌고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녀를 키우는 자세를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딸을 예뻐하면서 딸이 원하는 것이면 왠만하면 다 들어주는 편이었는데 이것은 내담자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딸은 그런 엄마와는 크게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계 하에서 딸은 엄마에 대해서 불만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생각해보면 엄마가 딸에게 바라는 것들의 많은 부분들은 딸의 입장에서는 못마땅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정답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내담자가 조금이라도 딸의 입장에 서서 딸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으면 그나마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심리극에서 흔히 사용하는 역할바꾸기를 해보았는데... 내담자는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다소의 저항도 보이고 쑥스러운 모습도 보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역할에 몰입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목소리도 변해가기 시작하였는데.... 딸의 마음을 알게 되었는지 정말로 딸이 할 만한 말을 하거나 심지어는 무례하게 까지 한 행동들도 해보였습니다. 물론 어떨 때는 어색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런데 한 참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내담자는 조금씩 더 깊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드디어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밉고 싫다고,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우는 가운데 내담자는... 어느 순간에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고 더 큰 소리로 통곡을 하였습니다. 어쩌면 자기가 어릴 때 아버지에게 느꼈던 그 불만과 불편감, 그리고 아버지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던 그 마음... 그것이 바로 딸이 자기에게 느끼고 있는 느낌이자 감정이 아닌가? 내담자는 딸의 연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최면에 걸렸고, 그 최면 속에서 연령퇴행이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힘들었던 옛 기억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딸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껴버렸다. 그리고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 통곡 속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딸에게 미안하다고.... 한 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내담자는 울음을 멈추고 물을 마시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무엇이 감사하냐는 질문에 그냥 웃기만 하면서... 그리고 오늘 상담은 이 정도로 하고 마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한결 편안하고 가벼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인지 모르지만 큰 짐을 벗어던진 홀가분한 표정과 목소리로 다음에 딸과 함께 찾아뵙겠다고 밝은 표정으로 상담실을 떠났습니다. 뒷모습을 보는 상담자의 마음 또한 홀가분한 기분으로 채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