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과 최면치료에 관하여
최면의 과학성과 심리치료 전문가들의 최면과 관련한 업적들을 살펴 봅니다.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프로이트에게 최면을 가르친 사람은 프랑스의 신경생리학자인 샤르코 (Jean Martin Charcot) 입니다.
그는 선배 겸 동료였던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인
브로이어 (Josef Breuer) 와 함께 최면연구 및 최면치료를 시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카다르시스 (Catharsis) 라 일컫는 정화법의 치료적 가치 및
무의식의 존재오 그것의 병리학적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1895년 브로이어와 공동으로 발표한 ‘히스테리 연구’ ( Studies on Hysteria)를 끝으로
그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정신분석학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이 과저에서 그는 최면이 일부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는 있으나
완전한 치료효과는 없으며  많은 환자들이 다른 증상을  갖고
되돌아오는  현상을 보였고,
어떤 신경증 환자들은 깊은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상과 같은 사실과는 별도로 프로이트는
실제로 10여명의 환자 중에서  한명 꼴로 밖에는 최면유도를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최면 능력에 회의를 느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면 프로이트는 각 개인의 최면감수성의 차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한 최면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최면감수성은 각 개인차가 존재하며
최면효과 역시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음을 간과 한 듯 합니다.
당대의 다른 전문가들은 최면을 통해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프로이트는 결국 자신의 최면능력에 대해서도 실망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프로이트는 최면에 대한 매력을 잃어가다가
결국에는 최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대신에 자유연상과 꿈의 해석으로
연구와 치료방법을 바꾸었던 것이지요.
이로써 최면은 정신분석 치료의 물결에 밀려
거의 50년 동안 대중의 관심권에서 멀어짐으로써
지하로 파묻히는 결과가 초래 됩니다.
최면치료와 최면에 관한 연구가 이렇게 묻혀가게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며 정신분석 역시 최면적 기반에 의해
무의식을 발견한 소중한 근거가 되었음도
묻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어 안타깝습니다.
최면이 모든것이 될 수 없음은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지만
심리치료를 하거나 심리상담을 통해 무의식에 접근하여
근원적 치료를 하기에는 가장 좋은 도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어보입니다.
한 사람의 빛나는 위대한 업적이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로 인해 귀한 것이 사라지거나
가볍게 취급되어지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과 일상생활 속에는
별도로 최면이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이미 최면상태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활달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긍정최면에 걸려 있는 상태라고 봐도 될 것이며
불면과 우울 속에 시달리는 분들 또한 불면최면,
우울최면 속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상담하고 회복시킨다는 것은
상태를 바꾸어줌을 의미합니다.
즉 긍정적 상태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그것을 잃지 않게 지지해 주며
부정적 상태 속에 든 분들에겐 그 상태를 깨고 바깥으로 나와
건강한 에너지가 활성화된 상태로 갈아 탈 수 있게 하는 것이
최면치료의 의미라고 믿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좋은 하루 되세요.